어른이들을 위한 책 선물 1
나는 집단주의 속 ‘샤이(shy) 개인주의’였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동의어로 여기고, 집단주의는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이 나라에서 개인주의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용기있는 일인가.
조직 내 적군이라는 주홍글씨를 감내할 용기가 없다면, 조용히 숨죽여사는 개인주의자로 남는 수밖에.
피곤한 삶을 자처하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감추는 개인주의자라면 모를까, 개인주의 자체를 부끄러운 아웃사이더로 여겨 존재를 숨기는 개인주의자들이 있다.
전자라면 별 문제가 없다만, 후자라면 우리는 이단아도 아니오, 남에게 폐도 끼치고 싶지 않은, 그저 자유를 갈구하는 ‘평범한’ 성향일 뿐이란 인지가 필요하다.
저자 역시 개인주의를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가 너무도 당연시한 집단주의 문화로 인해 수반되는 문제들은 우리를 완전히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도 덧붙인다. 예를들어 집단주의가 만들어낸 수직적 가치관(사회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획일화 되고 한줄로 서열화 된 것)으로 인해 삶의 국면에 있는 외관적 지표(학벌이나 직장, 직위, 사는 동네 등)가 줄 세우기를 당하는 것들이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생각 또한 이런 수직적 가치관에서 나온 발상 아닐까.
더욱이 ‘집단은 개인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전제를 인정한다면, 집단주의가 과연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저자 역시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말한다. 또한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라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집단주의보다 개인의 자유를, 행복을 보전해줄 수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개인주의의 매력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까.
개인주의자여, 이제 샤이(shy)할 필요없다.
이 책의 저자는 드라마로도 방영됐던 [미스함무라비]의 원작 저자이자,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지낸 문유석 판사다.
문유석 판사의 글은 [개인주의자 선언]을 접하기 전 신문 사설을 통해 먼저 접했다.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이 사설은 “저녁 회식 하지 마라. 젊은 직원들도 밥 먹고 술 먹을 돈 있다. 없는 건 당신이 뺏고 있는 시간뿐이다.”로 시작하는 꼰대 저격용 사설이었다. 이 속시원한 사이다같은 사설은 문유석 이름 석자를 내 뇌리에 단박에 박아버렸다. 그런 문유석 판사가 출간한 책 제목이 [개인주의자 선언]인걸 알았을 때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기 전, 문유석 판사가 쓴 사설 ‘말이 흉기다’와 앞서 말한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을 먼저 읽어보길 추천한다. 이 사설을 읽고난다면 문유석 판사의 통쾌하고 군더더기없는 필체에 매료되어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어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