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안녕하세요? ‘라이징 시니어 모델’ 박윤섭입니다.(웃음) 1960년생이니, 어느덧 환갑이 되었네요. 건설사 임원으로 퇴직해 모델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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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녕하세요? ‘라이징 시니어 모델’ 박윤섭입니다.(웃음) 1960년생이니, 어느덧 환갑이 되었네요. 건설사 임원으로 퇴직해 모델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A. 정년퇴임 후 사업파트너와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던 중, 시니어 모델에 대해 알게 됐어요. 오래된 연륜에서 뿜어나오는 압도적인 아우라에 눈을 뗄 수 없었죠. 저도 키가 185cm나 되는데 못할 이유가 뭔가 싶더라고요. ‘Why Not?!’을 외치며 그길로 모델아카데미를 찾아갔습니다.
A. 처음엔 촬영 자체가 정말 어색했어요. 평생 안 해본 생소한 경험이었으니까요. 카메라 앞에서 상대도 없이 홀로 표정을 짓고 포즈를 취한다는 게 낯설더라고요. 연습을 거듭했더니 이젠 포즈와 워킹이 제법 그럴듯해진 것 같아요.
A. 제가 모델아카데미에서 가장 처음 배운 게 ‘모델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언제 캐스팅이 들어올지 모르지만 당장 내일 촬영하더라도 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기본적으로 몸을 관리합니다. 사실 건설회사에 오래 다니며 삶에 치이다 보니 배가 많이 나왔었거든요.(웃음) 식단을 바꾸고 운동도 꾸준히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좋은 습관 덕분에 신체 건강은 물론 정신도 맑아졌어요.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죠.
A. 가까운 친구들은 ‘잘 어울린다! 건설 일보다 잘 맞는 것 같네?’라는 반응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왜?’라는 물음표를 보냈어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얼굴을 알린 지금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줘요. 동년배 사람들이 저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할 땐 뿌듯하죠.
A. 작년 가을 서울패션위크에서 데뷔했는데, 한국의 패션모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예요.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사진작가, 관객들이 정말 많이 왔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규모 행사라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젊은 사람들의 무대에 내가 서도 되는 건가?’, ‘아직 부족한 게 많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음악에 맞춰 무대로 들어선 순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심장박동을 느꼈습니다. 성취감도 컸고요.
A. 주된 활동은 물론 패션쇼입니다. 그 외에도 패션화보, 매거진, 뮤직비디오, 광고 촬영 등의 일정을 소화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데뷔 무대를 치러내니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유명 잡지와 화보 작업을 하고, 인터뷰도 하고, 공중파 TV와 종합편성채널에 얼굴을 내비치며 인지도를 쌓고 있습니다.
A. 젊은 사람들과 작업하는 일이 잦은 만큼 처음엔 걱정도 앞섰던 게 사실이에요. ‘다 늙어서 뭐하는 거야?’라는 시선으로 볼까봐 지레 움츠러들기도 했고요. 그런데 젊은 친구들이 동료로서 응원해주고, 값진 피드백도 주고,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배려해줘 고마워요. 저도 젊은 사람들을 한층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또, 좀 더 내 언행을 돌아보며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A. 실은 힙합 레이블이라는 단어도 생소했는데, 아직은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분야 모두를 알진 못하는가 봅니다.(웃음) 현장에서 감독님 요구에 맞춰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면서 노래를 처음 들어봤는데요. 하드코어 장르일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서정적인 음악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트렌드를 이끄는 뮤지션의 음악을 듣고 이해하는 작업이 참 즐거웠어요. 제가 모델 활동을 하면서 가장 활력을 얻는 요소가 바로 현장 분위기인데요. 모델·사진작가·스타일리스트 등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옷과 브랜드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과정이 짜릿하죠. 결과물이 잘 나올 때의 보람은 두말할 것 없고요.
A. 드라마 VIP에서는 경매 씬 중 보석을 낙찰받는 부자 역으로 나왔어요. 와디즈 CF에서는 신약을 개발하는 박사, 전시기획자 두 역할을 맡았죠. 신약 개발 편은, 제 큰형님이 의대에 다닐 때 저도 현미경을 봤던 경험이 있어서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시기획자 역할은 제가 쌍용건설에서 근무할 때 맡았던 업무 중 하나라서 좀 더 순조로웠고요. 감독님이 자연스럽다며 원테이크로 한 번에 오케이하더라고요.(웃음)
A. 외가 쪽에 흰머리 유전자가 강해요. 삼형제 중 저만 그 유전자를 많이 받아서 40대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죠. 초반 몇 년간은 까맣게 염색도 해봤는데, 화학성분이 눈에도 안 좋고 무엇보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아 그만뒀어요. 40대 후반부터는 자연의 섭리 그대로 흰머리를 유지했는데, 모델로서는 개성을 살린 플러스 요인이 된 것 같네요.
A. 살면서, 특히 건설 일을 하면서 이렇게 활짝 웃는 얼굴로 사람들과 마주할 일이 거의 없었어요. 어려서부터 사진을 찍어도 ‘김치~’ 하면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는 정도였는데, 나이 60 넘어 알게 된 활짝 웃는 내 모습이 바로 몰랐던 매력이지 싶네요.
A.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남는 시간에 골프나 라이딩 같은 취미활동을 하며 지내지 않았을까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날 접점이 없는 만큼, 지금보다는 지루했을 것 같아요.
A. 어려서부터 운동을 워낙 좋아했어요. 초등학생 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도 했고, 테니스도 웬만한 선수만큼 치는 수준이죠.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스킨스쿠버를 안 해보고 삶을 마감한다면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말을 듣고, 조만간 스킨스쿠버에 도전해볼 계획입니다.
A. 올해 목표와 인생 목표가 같아요. 건강하게 나이 들고, 그 건강을 기반으로 내 인생에서 해볼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고 싶습니다. 예술, 스포츠, 학문 등 다양한 방면에서 멈추지 않고 도전해보려고요.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저는 하루하루를 단거리 경주하듯 치열하게 달려왔어요.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고, 일단 선택했다면 실행에 옮겼죠. 그 선택과 결과가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요. 물론 잘못된 선택을 했던 적도 있겠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때의 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테니까요. 10년 뒤, 20년 뒤에 내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지만, 후회 없이 산 내 모습은 무엇이든 값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A. Why not? Just do it! 생각하는 사람보다 행동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어떤 일에 흥미가 있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탐색하는 데 늦은 나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해보지도 않고 주저앉는 것만큼 허망한 건 없으니, 지금 여러분의 가슴에 품은 도전을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