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통해 알아 보는 리더십 이야기 3
조선의 제9대 왕 성종은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와 소혜왕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휘(諱, 죽은 어른의 생전 이름)는 이혈(李娎)이며 형은 월산대군이다. 13세밖에 안 된 어린 성종을 왕으로 세우기로 결정했을 때 형 월산대군은 16세였다.
형이 살아있었음에도 동생이 왕이 된 것은 기존의 왕위세습의 관념과 맞지 않았다. 월산대군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근거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치적 결탁이 존재했다는 것. 성종의 장인인 한명회와 할머니인 정희왕후의 정치적 관계가 이를 방증한다. 어린 성종을 대신하여 정희왕후는 수렴청정으로 왕권을 강화시킨 후 성인이 된 성종에게 왕위를 이어나가게 했다. 비록 왕권 강화의 명목은 정당하지 못했지만, 성종은 안정된 형국에서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었다.
‘성종’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경국대전이다. 경국대전은 세조 때부터 여러 법전, 조례, 관례 등을 아우르며 수차례의 개정 끝에 25년 만에 완성된 것이다. 이는 국가 전반을 통치할 수 있는 체제와 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것과 다름없다. 우리 나라에 전해져 내려오는 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중앙과 지방의 관제, 조세, 군사, 형벌 등 분야별로 규범 체계를 확립하였다. 이를 통해 법치주의 사회로 나아갔다는 것을 일깨워주며 조선 개국 이래 가장 태평성대한 시기였음을 말해준다.
지금까지도 법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과 상황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법이라는 틀에서 생각하며 국가 운영의 기준을 제시한다. 물론 시대와 환경에 따라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안을 발의하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는 일종의 지침이 바로 법이다.
성종은 역사, 지리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편찬하였다. 먼저 역사책으로 알려진 ‘동국통감’은 신라 초에서 고려 말에 이르는 기록이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을 연대순으로 기록하였으며, 신진 사림들이 참여함과 동시에 성종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만든 것이다.
아울러 지리서로 알려진 ‘동국여지승람’은 ‘팔도지리지’와 ‘동문선’에 수록된 동국문사의 시문을 첨가한 책이다. 이 책은 지리, 풍속, 인물, 봉수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또한, 정확한 지도는 아니었지만 지리지에 지도가 들어갔다는 것이 특이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역사서, 지리서와 함께 조선시대 의궤와 악보를 정리하여 왕명에 따라 제작된 악전도 있다. ‘악학궤범’으로 알려진 이 악전은 예조판서 성현, 장악원제조 유자광, 악원주 신말평 등이 편찬하였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장악원에는 그 당시 의궤와 악보가 너무 오래되었고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해도 잘못된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악규집이 있어야 한다는 목적으로 편찬사업을 진행하였다. 음악에 필요한 사항을 총망라한 악학궤범은 우리나라 음악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문화는 사람들의 생활 이상을 실현하는 시대적 양식과 정신이다. 문화를 통해 현재 어떤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으며 미래를 위해 어떤 대안이 마련되어야 하는지 고민해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문화는 시대와 시대를 이어가는 매개체로서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사림파는 성종 시대부터 등장하여 훈구 세력을 견제하며 그들만의 힘을 키워나갔다. 특히 성종은 힘의 균형을 이루어 가고자 사림 세력들을 불러 모았다. 대표적인 사림인 김종직은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인재 양성에 힘쓴 영남 사림파의 영수다. 사림파가 나타나면서부터 이념과 가치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쪽 세력이 강하면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지지만, 이를 견제하는 세력이 등장하면 잘못된 것을 뿌리 뽑는 단초를 제공해 준다. 조화를 이루는 것은 어렵지만 균형은 잡아가는 일은 사람이나 체제를 통해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성종은 조선시대의 체제 완성을 이룩해 나갔지만 그 이면에는 비리의 온상이 되기도 하였다. 퇴폐 풍조가 만연해졌으며 연산군의 폭정으로 이어진 비극을 초래하였다. ‘안정’이라는 가치는 사회 전반의 평화로움을 가리키기 때문에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나 때로는 고정불변한 상태에서 퇴로를 향해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요즘과 같이 여소야대 정국이라면 힘의 논리가 아닌 서민 중심의 관점에서 이들을 위한 일을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균형감각을 키우는 길이다.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 가고자 체제와 제도를 정비한 성종. 그는 국가의 지도자로서 민생 안정의 효력을 발휘하는 틀을 마련하였다. 같은 공간일지라도 다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도 사람들은 삶을 이어나갔고 생활 속 지혜를 발휘해 나갔다. 누구나 손 안에 든 스마트폰으로 활발한 정보 공유와 축적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게 된 세상이다. 빠르고 편리한 세상 속에서 지혜는 지식과 정보를 통해 얻을 수 없으며, 학식이 풍부한 사람들의 생각을 가져올 수 없는 영역에 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지혜는 되풀이되는 역사를 통해 발견할 수 있으며 깊은 성찰이 뒷받침될 때 변하지 않은 가치를 낳을 수 있다. 거듭되는 역사의 돌림판 속에서도 지혜를 깨우쳐 나간다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안정의 발판을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박영규, 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