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통해 알아 보는 리더십 이야기 2

리더십의 혁신을
보여준 인물, 정조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다.
새로운 정부나 조직을 구성할 때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로 몇 차례 슈퍼 수요일을 겪으며 조직 구성에 난항을 겪고 있는 요즘.
앞으로 어떤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어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 나갈까?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시대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 혁신의 가치를 선보인 인물을 만나보기로 하자.

조선시대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둔 왕 두 명을 꼽으라고 하면 대개 전기는 세종, 후기는 정조다. 이들은 모두 다방면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으며 백성의 삶을 생각했던 인물들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다양한 업적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정조는 숙종, 영조보다 더욱 강력한 탕평책을 추진함으로써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며 왕권 강화에 박차를 가하였다. 친인척 배제는 물론이며 당파와 신분에 관계없이 능력이 있는 인재라면 적극 등용하여 기회의 평등을 실천하였다.

무엇보다 정조가 실시한 탕평책은 숙종과 영조의 탕평책과 달랐다. 그 이유는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인재 등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 ‘규장각’이다.


규장각은 왕실도서관에서 출발을 했지만, 정조는 이곳을 차츰 학술 및 정책 연구기관으로 변화시키며,
역대의 도서들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학문 연구의 중심기관이자 정조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하는 핵심 정치 기관으로 거듭 태어나게 하였다.
정조는 “승정원이나 홍문관은 근래 관료 선임법이 해이해져 종래의 타성을 조속히 지양할 수 없으니,
왕이 의도하는 혁신정치의 중추로써 규장각을 수건(首建)하였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정조는 당파나 신분에 구애 없이 젊고 참신한 능력 있는 젊은 인재들을 규장각에 모아 개혁정치의 파트너로 삼았다.
정약용을 비롯한 걸출한 학자들이 많이 양성되었는데, 특히 박제가ㆍ유득공ㆍ이덕무ㆍ서이수와 같은 서얼들을 적극 등용한 점이 주목된다.
이제 조선후기의 문화중흥을 이끌어 가는 두뇌집단의 산실이 된 것이다.

-네이버캐스트 궁궐 전각 이야기 '규장각' 中


정약용,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이들은 모두 규장각 학자들로 조선 후기의 문화를 꽃 피운 인물들이다. 이들은 신분이 아닌 능력 위주로 정조가 선발한 인재였으며 분야별로 정통한 지식을 갖추며 삶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지금까지도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정약용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개혁가로서 성실과 인내의 아이콘이다. 그는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심서』, 『여유당전서』 등 다양한 분야의 저서를 남겼으며, 옛것에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규장각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역대 왕들의 글이나 책 등을 정리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개혁정치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법을 본받아 새것을 창출한다)’은 규장각을 설립한 취지에 가장 부합되는 정신이었다.

-네이버캐스트 궁궐 전각 이야기 '규장각' 中



이와 함께 서자 출신인 박제가는 상공업 발전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수레와 화폐 사용을 주장하였다. 시대를 앞서 나간 기치(旗幟)로 조선 후기의 문화 중흥에 이바지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유득공, 이덕무와 교류하며 문화 모임을 결성하여 끊임없이 변화의 물꼬를 만들어 나갔다.

규장각 학자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조선 후기 사회 전반에 혁신을 일구어 냈던 원동력은 사람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정조의 개혁 정치로 볼 수 있는 터전인 규장각은 능력 있는 사람들의 기량을 펼치는 곳이 아니었을까.

리더십은 사람을 위한 가치에서 비롯된다.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이 이야기한 내용에 따르면, “리더십은 사람에 관한 것이지 조직에 관한 것도 계획에 관한 것도 전략에 관한 것도 아니다. 즉,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하는 동기부여다. 사람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시공간을 떠나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십이 진정한 성장이며 변화다.

한편, 정조는 1776년 대신들의 견제와 감시를 이겨내고 조선의 왕이 되었다. 개혁을 통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자 소통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나는 최고지도자로서 이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야 할 무거운 책임을 받았다. 이제부터는 우주자연과 인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로 호응하느냐 호응하지 않느냐.’라는 소통의 문제가 정치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듯하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람 사이에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올바른 길이 열리느냐 닫히느냐가 달라진다.

-『개혁군주 정조의 78가지 질문』 中



소통의 부재는 모든 문제의 근원일 수밖에 없다. 지도자라면 소통 자체가 습관이 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 정조는 탕평정치로 붕당 간 대립을 해소하고 혼란한 정세에 대응하려고 했다.


정조의 경우, 조선 후기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제왕의 위치에 있었지만, 지배자로서 피지배자인 백성 위에 군림하려는 생각을 내세우기보다 백성의 삶을 올바르게 이끌어 가려는 통치자로서 리더십 확보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개혁군주 정조의 78가지 질문』 中




소통의 목적은 백성의 삶을 이해하는 데 있었다. 이는 지도자로서 백성을 살피는 마음과 더불어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다양한 인재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국가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하면 지식, 용인술, 통합능력 등 다양한 능력과 자질을 요구한다. 여기서 정조의 리더십은 용인술과 소통에 있지 않을까. 물론 지식을 기반으로 조선 후기 개혁의 단초가 되고자 다양한 정책과 전략을 구사하였으나 정조 개인의 역량에 집중되어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하기 어려웠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일시적인 정책으로만 그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지도자로서 개혁을 결단하고 통찰력을 갖춘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었기에 조선 후기의 문화 부흥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혁신은 인생을 바꾸고 시대를 바꾼다. 기존 것을 무조건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옛것을 기반으로 삼고 새 것을 조화롭게 추구하는 ‘법고창신’의 가치를 실현해 나갈 때, 진정한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과거를 통해 배우고 새로운 생각을 실천하는 내일을 꿈꿔본다.



경험이 재산인 사업 꿈나무
Evel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