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Out

봄이 오는 길목
통영에서 찾아온

‘봄날의 색’

남도에서 불어온 보드라운 바람결에 나뭇가지마다 꽃을 툭툭 틔워낸다.
겨우내 움츠렸던 자연이 기지개를 켜는 시간, 봄을 마중하러 간 길 끝에서 통영을 만났다.
산홋빛 바닷길을 따라 빨간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 섬을 호젓하게 거닐다 보면
왜 통영을 ‘봄이 오는 길목’이라고 하는지 절로 알게 된다.
생동감 넘치는 봄날의 컬러들이 지금 통영에서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고 있다.

붉게 물든 동백꽃, 봄이여 오라!

‘동양의 나폴리’라는 수식어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바다 앞에 가만히 서 있어도 좋고, 나날이 푸른빛이 짙어지는 해안도로도 근사하며, 언덕배기에 들어앉은 마을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요즘 통영에서 봄날의 색이 가장 짙은 곳은 뱃길로 40분 정도 떨어진 장사도다. 지금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지나고 있는 섬에 동백까지 환히 꽃등을 밝히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대포항에서 배로 10분 정도 소요되는 장사도는 요즘 동백이 지천이다. 1986년 마지막 주민이 섬을 떠난 뒤로 자연은 스스로 풍성해져, 10만 그루나 되는 자생 동백나무가 화사하게 피고 진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붉게 타오르는 동백꽃은 역동하는 봄 자체다.

다도해(多島海) 심연 따라 한 바퀴

미륵산 정상에 오르면 신선대 전망대부터 통영항 전망대, 한려수도 전망대, 한산대첩 전망대, 통영상륙작전 전망대, 당포해전 전망대, 박경리 묘소 전망쉼터 등등 통영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를 골라 볼 수 있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다도해(多島海)의 절경을 천천히 둘러봐도 좋고, 꼼꼼하게 망원경으로 살펴도 좋다. 푸른 바다 한가운데 점점이 흩어진 섬, 대자연과 어우러진 천혜의 비경이 그저 일상인 곳, 570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통영에서 빠른 걸음은 반칙이다. 소매물도와 대매물도로 이루어진 매물도는 기암절벽과 동백나무 숲을 가로지르는 트래킹 코스로 유명하다. 바닷길이 열리는 물때를 잘 맞춰 가면 바다를 가로질러 등대섬에 걸어 다녀오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바다에 핀 연꽃’이라는 뜻의 연화도는 통영의 남쪽 바다에 있는 섬이다. 거대한 아미타대불이 바다를 바라보고 선 연화봉에 오르면 하늘과 맞닿은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는데, 어느 방향으로 셔터를 눌러도 한 폭의 그림이 된다. 4km 내내 바다만 보며 걸을 수 있는 삼칭이 해안길에서는 더욱 선명한 쪽빛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느릿느릿 걸으며 삶에 쉼표를 찍는 해안길은 눈 깜짝할 새에 피고 지는 꽃잔치가 아니니 조바심낼 필요도 없다. 이 길에는 수륙리 마을이 있다. 임진왜란 때 죽은 수군과 무고한 백성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극락으로 천도하던 곳, 수륙리의 봄은 더없이 평화롭고 무심하고 푸르다. 통영은 이순신 장군이 한산해전을 승리로 이끈 땅이다. 변방의 소도시지만, 통영 주민들에게 이는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역사를 재현하는 ‘통영한산대첩축제’ 기간에는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선박과 함께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놀이를 볼 수 있으니 놓치지 말자.

예술이 움트는 골목

통영에 왔다면 쪽빛 바다가 길러낸 예술가들의 숨결도 느껴봐야 한다. 강구안 언덕배기에 웅크린 벽화마을 ‘동피랑’은 마을 전체가 야외미술관이다. 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골목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예술단체가 나서서 공모전을 열었고, 미술학도들이 몰려와 골목마다 그림을 꽃피워냈다. 동피랑에 이어 요즘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해진 동네가 강구안 골목이다. 통영항의 중앙동 일원을 일컫는 ‘강구안’은 ‘개울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입구’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항구가 육지로 들어온 형상인데, 닻을 내리고 줄지어 선 어선들과 고요한 호수 같은 바다가 아늑하다. 이중섭의 대표작 <흰소>와 <황소>, <달과 까마귀> 등이 모두 강구안 골목에서 탄생했고, 연인에게 연서를 쓰던 유치환이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는 시의 영감을 얻은 곳도 이 골목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꽃을 노래한 김춘수를 비롯해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작가 박경리 등 우리 문화예술사의 별 같은 존재들이 이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강구안 골목에 있는 물고기는 이중섭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고등어이고, 달무리 악보는 윤이상 가곡의 음표를 조형화한 것이다. 모퉁이 하나만 지나도 화가의 그림이 등장하고 시인이 시상을 얻었던 장소가 나타나니, 통영 어디로 발길을 돌려도 심심할 틈이 없다.

‘팔딱팔딱’ 입맛 당기는 통영의 봄

통영의 봄은 도다리쑥국 끓이는 냄새와 함께 찾아온다. 인근에서 나는 해산물이 모두 모이는 중앙동 ‘통영활어시장’에는 펄떡이는 생선 행렬은 물론 입구부터 줄지어 선 어민과 관광객들로 ‘물 반 사람 반’이다. 이른 봄 통영 바다에는 도다리가 많이 잡힌다. 어린 도다리에 쑥을 넣고 국을 끓여낸 게 도다리쑥국이다. 부들부들한 약쑥과 함께 끓여낸 도다리쑥국은 ‘한 그릇만 먹어도 일 년 내내 무병한다’는 속설도 있으니, 도다리쑥국 한 그릇으로 남풍을 타고 올라오는 봄기운도 느껴보고 건강도 챙겨보자.


글. 윤진아
사진. 통영시청 해양관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