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여행길이 있다.
바로 지금, 이 계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광을 머금었기 때문이다.
늦가을의 전주한옥마을이 그렇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촌로가 “이곳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으니 조심하라”는 농을 건넸건만,
우리의 마음은 이미 처마 자락 꼭대기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조선왕조 500년 흥망 담긴 언덕
동전주 IC를 빠져나와 바람에 밀리듯 언덕에 오르면 까만 기와지붕이 차르르 밀려든다. 이 언덕에서 이성계는 새 나라에 대한 야망을 노래했고 고종황제는 쇠락해가던 조선을 바로세우고자 비를 세웠다. 조선왕조 500년의 흥망이 담긴 곳, 오목대다. 크고 작은 700여 채의 한옥이 연출하는 풍경은 마을 정면에서는 쉽게 내어주지 않는 숨은 보물이다. 오목대의 청량한 바람을 맞으며 숨을 가다듬었다면, 태조로를 따라 본격적인 걷기 여행에 나설 차례다.
전주 여행의 묘미는 골목길 걷기에 있다. 출발지는 경기전으로 삼는 게 좋다. 경기전 입구엔 암수 두 마리 동물이 받치고 있는 하마비가 있는데, 이곳을 찾은 이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경사스러운 터에 지어진 궁궐’을 의미하는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모신 곳으로, 1410년 창건됐다. 경기전에서 가까운 전동성당은 호남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한국의 성당 중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건물로 손꼽힌다.
길 따라 낭만이 흐르네
나지막한 담 너머 풍경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전주한옥마을은 한옥 700여 채가 밀집한 국내 최대 한옥마을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상인들이 성안으로 들어와 상권을 확장하자, 이에 반발한 전주 사람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지어 살기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됐다. 장독대와 바깥행랑채, 솟을대문 곳곳에 하늘의 뜻에 귀 기울이며 겸허하게 살아왔던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 켜켜이 스며들어 있다.
전주한옥마을의 정신적 중심지인 전주향교(사적 제379호)는 우리나라 향교 중 보존이 가장 잘 되어있는 곳이다. 드라마 <성균관 유생들>의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11월의 향교는 ‘꽃 천지’다. 수령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 보호수를 따라 노란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 전주향교의 가을 낙화(落花)는 ‘두 번째 꽃’이라는 수식이 무색하지 않게 매혹적이다. 전주한옥마을을 대표하는 고택은 학인당이다. 1908년에 지은 학인당은 동원된 도편수와 목공 등 인부의 수만 4,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고종 때 영릉 참봉을 지낸 전주 대부호 백낙중이 지었는데, 처음 지을 당시에는 99칸에 대지면적만 2000여 평에 이를 만큼 으리으리한 규모를 자랑했다. 대지 520평에 7채의 건물만 남은 지금도 위세가 당당하다.
전주한옥마을에는 즐길 거리도 풍성하다. 공예품전시관에서는 전주한지, 합죽선, 태극선 같은 공예품을, 전통술박물관에서는 전국 명인들이 만든 전통술을 구경할 수 있다. 전통시장도 들러볼 만하다. 전주에서 가장 북적이는 시장인 남부시장이 전주부성 4대문 중 남문인 풍남문과 연결된다. 스러진 옛 시간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수천 년을 간직해 온 이야기보따리를 풀다 보면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저문다. 한옥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서정적인 해넘이 풍경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누구든 절로 시인이 될 것이다.
글. 윤진아
사진. 김선재(전주향교 사진제공: 전주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