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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매일의 발견

김민철 카피라이터의 ‘취향존중 라이프’

누군가는 꿈만 꾸고, 누군가는 그 꿈을 이룬다.
‘더 행복한 인생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책상에 앉아 고민하는 대신,
김민철 카피라이터는 마음의 방향을 따라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기억력은 형편없지만 성실한 기록으로 에세이를 펴내고,
그 좋아하는 술도 집에서만 마시는 ‘집순이’라면서 여행책까지 쓴 그녀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선택했던 가치가 당연하고 다행스럽게도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김민철 카피라이터 · TBWA KOREA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민철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 중 한 사람이다. 광고대행사 TBWA KORE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인 그녀는 SK텔레콤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대로 T’, 일룸 ‘가구를 만듭니다’, e편한세상 ‘진심이 짓는다’, SK브로드밴드 ‘See the Unseen’ 등의 히트 카피를 팀과 함께 만들었다. 베스트셀러도 여러 권 출간했다. 회의시간의 치밀한 필기를 바탕으로『우리 회의나 할까?』를 냈고, 일상의 기록을 바탕으로『모든 요일의 기록』을, 틈틈이 떠난 여행에서의 기록을 통해 『모든 요일의 여행』을 썼다. 최근 펴낸 세 번째 에세이 『하루의 취향』을 통해 김민철 카피라이터는 “행복해지고 싶다면 내 마음에 응답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Q. ‘취향’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셨어요.

A. 취향이란 말이 어쩐지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것 같았어요. 사실 내 취향을 말할 때 조금은 주저하게 되잖아요. ‘나’라는 사람의 선택이 들어간 그 한 가지는 왠지 고급스럽고 독특해야 할 것 같죠. 다들 훌륭하고 멋진 와중에 나만 초라해 보이는 것 같고요. 결국 나를 말할 때조차 스스로 타인의 시선을 끌고 와 비교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전에서 ‘취향’의 정의를 찾아보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이라고 나와 있더라고요. 마음의 방향이라니, 생각보다 심플하고 선명하죠.

Q. 미디어나 SNS의 영향으로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의 취향에 휩쓸리기 쉬운 시대죠.

A. 맞아요. 요즘은 자기 자신을 정말 많이 드러내잖아요. 그런데 그 방식을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남들에게 잘 보이는 방식으로 나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광고회사라는 조직에 있다 보니,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인지 휩쓸리기 쉽더라고요. 좋아하는 음악, 책, 여행처럼 단편적인 것에서부터 사람과 사랑, 일에 대한 것까지, 취향의 영역은 무궁무진해요. 그 넓은 바다에서 나의 취향을 건져 올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단순히 옷을 하나 고르는 것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취향의 영역이에요. 옷을 고를 때 내 마음을 의식하는 것처럼, 나머지 모든 일에 있어서도 내 마음의 방향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 방향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으니까요. 내 마음을 꼼꼼히 파악해서,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선택을 내려야 합니다.

Q. 내 취향을 알아가고, 내 취향에 맞춰 산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취향이 뭐 그리 중요해?’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무뎌져 있기도 하고요.

A. 내가 ‘이게 내 취향이야!’라고 내 영역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나는 계속 무색무취한 인간으로 남게 될 것 같아요. 내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나는 왜 이걸 좋아하는 거지?’ 하고 잠깐이라도 멈춰 서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나를 존중해줘야 해요. 고상하고 우아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극히 개인적인 즐거움이니까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계속 스스로와 마주하게 된다는 겁니다. 누구나 ‘지극히 개인적인 즐거움으로 가득 찬 각자의 행성’이 필요하거든요. 나만의 취향 지도 안에서 우리는 좀 더 쉽게 행복에 도달할 수 있어요.

Q.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도, 심지어 회사 일에도 취향이 개입한다는 건 미처 생각지 못했어요. ‘오래 회사에 붙어 있는 것도 명백히 취향 덕’이라는 대목에선 무릎을 탁 쳤다니까요

A. 수많은 유혹 앞에서 저도 발을 동동 굴렀죠.(웃음) 누군가는 자신이 버는 돈의 액수를 알려주며 프리랜서 전향을 권하기도 했고, 어떤 회사는 카피 쓰는 일만 해보라며 큰돈을 제시한 적도 있어요. 며칠을 고민하다가 문득 이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의 일 취향’을 중심에 두고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카피라이터가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제가 좋아하는 일은 카피를 쓰는 게 아니었어요. 잘하기 위해 끝없이 애쓰고 있을 뿐이죠. 내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일들은 회의하고, 거기서 나오는 아이디어의 길을 잡고, 그걸 잘 정리해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최적의 스케줄을 짜는 일이죠. 그러니까 나는 아이디어 내는 것보다 여러 사람과 ‘함께’ 일을 ‘끝까지’ 진행할 때 재미를 느끼는 사람인 거예요. 내 일 취향을 존중한다면 나는 회사에 귀속되어야 하는 존재죠. 팀장으로서의 삶은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잘 어울려요. 재밌으니까 신나서 일하고, 나를 나답게 하는 일을 정확히 알고 일하는 지금 누구보다도 행복합니다.

Q. 일상을 세밀하게 기록하는 것도 취향인가요?

A. 맞아요. 책을 쓰면서 알았는데, 제가 짬짬이 글을 쓰는 스타일이더라고요. 30분이라도 시간 나면 메모하다가 회의하러 들어가죠. 무슨 날 어떤 글을 썼는지 달력에 기록했더니 거의 이삼일에 하나씩 써갔더군요. 제가 은근히 성실한 사람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웃음)

Q. 광고로 먹고사는 카피라이터인데, ‘광고는 두 번째’라는 다짐에도 눈길이 갔어요.

A. 사실 광고쟁이들에게 광고만큼 힘이 센 것도 없어요.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급한 일’, ‘중요한 경쟁 PT’라는 탈을 쓰고 금세 내 일상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죠. 거기에 일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과 이번엔 잘해내야만 한다는 압박감까지, 그 앞에서 번번이 내 사생활을 주장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 그래서 더 자주 스스로에게 말해줬어요. 광고는 두 번째라고요. 힘이 센 광고를 고집스레 두 번째 순서로 옮기고, 연약한 저녁식사를 첫 번째로, 미뤘던 가족/친구와의 약속을 첫 번째로, 오랜 꿈이었던 여행을 첫 번째로 삼겠다고 다짐했죠. 사소하지만 중요한 그 모든 것들을 위해 첫 번째 자리를 비워두겠다는 다짐은 지금도 매 순간 되새기고 있습니다. ‘야근 안 시키는 팀장이 되겠다’는 결심도 지키려고 노력해요. 결국 잘 살기 위해 우리는 광고를 만드니까, 잘 살아야 좋은 광고도 만들 수 있으니까요.

Q.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걸 ‘삶에 대한 선언’이라고 표현한 것도 신선합니다.

A. 과도한 대출을 받아 비싼 동네에 집을 사고, 집값이 오를 거란 기대로 하루하루 빚을 갚으며 ‘지금의 행복’을 유예하는 삶을 거부하기로 했어요. 내 깜냥의 대출을 받아 나와 닮은 집을 마련하고, 나중에 부자가 될 거란 희망 대신 지금 잘 살겠다는 마음이었죠. 다들 우리 부부가 꾸며놓은 집을 보는 순간 단숨에 그 뜻을 이해하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원하는 대로, 내 취향대로 ‘살아버리는’ 것은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한 선언이라는 것, 그리고 내 인생을 선언할 권리는 결국 나에게 있다는 것을 말예요.

Q. ‘취향은 한순간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실패와 시도 끝에 생겨나는 결과물’이라고 했는데, 본인의 경험담인가요?

A. 맞아요. 어렸을 땐 친구의 예쁜 글씨체를 따라 하다가 결국 실패하기도 했죠.(웃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개성과 안목을 훔치고 싶어 했던지, 내가 가질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얼마나 내 마음에 꼭 들었던지 몰라요. 수많은 실패 끝에 나는 오늘도 ‘나’밖에 되지 못했어요. 어쩌면 당연하게도,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말예요. 마음은 매일 흔들리며 어딘가에 닿고, 우리는 그것에 지갑을 열거나 시간을 쏟아요. 운 좋게도 그중 몇은 나에게 남죠. 나에게 꼭 어울리는 색깔로요. ‘나의 취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마침내 생겼다면, 나에겐 그 취향을 존중할 의무가 있지 않겠어요? 근사하거나 완벽하지 않아도 바로 그 취향이 오늘, 가장 나다운 하루를 살게 했으니까요.

Q. 긴 시간 진솔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수많은 시도 끝에 체득한 ‘내 취향대로 살며 행복해지는 방법’을 이베스트투자증권 가족들에게도 알려주세요.

A. 하루 24시간 중 다만 얼마 동안이라도 내가 나답게, 내 취향대로 살아갈 시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요. 저는 토요일엔 도예를 하고, 밤늦게 귀가해도 남편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그런 시간들이 스스로 ‘나답다’고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일상을 다른 속도, 다른 시선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술과 여행도 제게는 매우 중요한 매개체죠. 지금도 저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틈틈이 술과 이야기를 나누며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늘 여러 갈래의 마음이 다투지만, 그 마음을 따라 삶의 취향을 만들어가는 중이죠. 제가 ‘하루의 취향’이라는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질문이었어요. 내 취향은 무엇인지, 내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건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이베스트투자증권 가족 여러분도 이런 질문의 시간을 잠깐이라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가장 잘 아는 건 자기 자신뿐이니까요. 이 질문을 놓지 않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를 좀 더 알차게 꾸려갈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