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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세계의 지붕이다. 8,848m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필두로 8,000m 이상의 봉우리가 모두 14개나 존재하는 ‘신의 영역’이다. 아시아인으론 처음이자 세계 8번째로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성공한 엄홍길 대장은 2007년 해발 8,400m 로체샤르에 오르면서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좌 등정의 신화를 썼다. 처음엔 에베레스트 하나가 목표였지만, 고봉을 하나씩 오르는 사이 나머지도 해볼 만하다 싶어졌단다. 정상을 향한 걸음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캉첸중가는 세 번의 도전 끝에 이루어졌다.
“정상을 100m쯤 남겨놓은 설벽에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들 만큼 지치더라고요. 칠흑 같은 어둠과 뼈를 파고드는 추위 속에서도 깜빡깜빡 잠이 들었는데, 그때마다 제가 왁자지껄한 술집에서 친구들과 앉아 있는 거예요. 너무 고통스러워 포기하는 게 낫겠다 싶다가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억지로 눈을 떴어요.”
급기야 환청에 시달리던 어느 순간 눈이 아파 왔다. 여명이 가시처럼 눈을 찔러댄 것이다.
“강추위 속에 10시간 넘게 쪼그리고 있느라 온몸이 굳어 버렸는데도, 구름바다를 뚫고 비치는 햇살을 보는 순간 너무 아름다워 입이 벌어졌어요. ‘이제 살았구나!’ 싶으니까, 해만 뜨면 곧장 하산하겠다는 마음이 사라지고 다시 정상에 올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뭐예요. 끝내 기어서 올라갔죠. 이 고비만 넘기면 목적지가 기다리고 있다는 희망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추진력인 것 같아요.”
아끼던 후배가 죽었다. 에베레스트 해발 8,750m 지점 눈 덮인 고봉에 꽁꽁 얼어있다. 그 차갑고 외로운 시신을 집에 보내주자고 엄홍길 대장이 나선다. “그들은 산에 올라갔어. 그럼 된 거야.”라는 주변의 만류에 엄 대장이 말한다. “그럼 내려와야지. 거기서, 삽니까?!”
2015년 12월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의 실제 주인공인 엄홍길 대장은 “영화를 보면서 그날의 기억이 생생해 떠올라 많이 울었다”고 귀띔했다. 세계 등반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휴먼원정대는 그 물량과 인원수에 있어서도 보기 드문 대규모 원정대였다. 기실 정상에 오르는 것과 그 밑에 누워 있는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정상 등반은 단 1분만 발을 디뎌도 성공한 것으로 인정되지만, 시신을 수습해 아래로 운구하는 일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전혀 새로운 등반 방식과 장비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려와야 하는 이유를 아는’ 진짜 산쟁이들의 얘기를, 영화 [히말라야]는 참 잘 담아냈다.
“그동안 제가 이끌었던 원정만 수십 회를 훌쩍 넘어서지만, 그 어떤 원정도 휴먼원정대만큼 오랜 기간 지속된 경우는 없었어요. 꼬박 일 년을 준비한 뒤 77일간의 사투 끝에 아직도 차가운 눈에 갇혀 있는 친구를 편안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진짜 ‘산쟁이’는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 앞에서 한없이 미미한 자신을 직시하기 위해 산에 오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내 다시 내려온다. 인간이 발붙이고 살 곳은 땅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2007년 12월 남극대륙 빈슨매시프(4,897m) 등정을 끝으로 엄 대장은 더 이상 고산 등반을 하지 않는다. 대신 매년 네팔을 찾는다. 광활한 자연을 좇아 히말라야로 갔던 엄 대장은 이제 ‘사람’ 때문에 간다. 8,000m의 16좌를 완등하듯 네팔에 16개의 학교를 짓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2차 에베레스트 원정 때 숨진 셰르파의 고향 팡보체에 세운 휴먼스쿨은 ‘네팔 빚 갚기’의 첫 단추였어요. 산에 대한 경외감이 커질 무렵, 산꼭대기만 보던 시선이 서서히 넓어져 어느 순간부터 산 아래도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사람이 보이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보였죠. 제대로 된 교육과 의료 시설도 없는 곳에서 부모의 가난을 대물림받는 아이들에게 자립할 토대를 만들어주고 싶었고, 그게 바로 학교였습니다.”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고봉 16좌를 등정한 엄 대장의 도전은 이제 고봉에서 내려와 휴머니즘을 전파하는 대장정으로 그 맥을 잇고 있다. 전 세계 오지에 희망을 심는 틈틈이 매달 한국의 중학생들과 함께 산에 오른다. 매년 ‘DMZ 평화통일대장정’ 땐 보름 내내 대학생들과 함께 걷는다. 언젠가는 남과 북의 학생들을 데리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종단하는 게 꿈이다. 그러니까 엄홍길 대장에게는 눈앞의 모든 삶이 17번째 8천 미터 고봉인 셈이다.
“인간이 왜 인간인 줄 아세요?”
엄 대장이 묻는다. 16좌 등정 같은 대기록이 ‘도전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전한다면, 엄홍길휴먼재단은 ‘함께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전하고 있다. 인간이 왜 인간인가에 대한 자기증명 같은 일이랄까. 그런 그에게 도전의 종착지가 어디냐고 물으니, 히말라야도 아니고 북극점도 아닌, ‘산에서 내려와 사랑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은 소박한 선술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극한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그를 견딜 수 있게 해준 건 베이스캠프 안에 있는 따끈한 차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용기 있는 도전이 아니었다면 차 한 잔, 막걸리 한 사발의 소중함을 어디서 깨달을 수 있었겠느냐는 너스레에 미소가 고인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엄홍길 대장은 그래서 ‘산을 한번 다녀오라’고 권한다.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은 찾아와요. 산에 오르다 마주하는 숱한 위기처럼 말예요. 다행스러운 사실은, 어떤 한계를 넘었다는 극기의 경험이 인생의 여러 위기를 이겨내는 힘을 키워준다는 겁니다. 어렵다, 희망이 없다고 토로하는 분들에게도 감히 ‘한번 부딪쳐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람들은 스스로 한계를 긋기 때문에 안주하게 되니까요.”
살아 숨 쉬는 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한걸음에 30cm씩 걷다 어느새 산 정상에 오른 것처럼,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언젠가는 목표에 다다를 것이라고 믿는다. 이미 그 기적을 체험한 엄홍길 대장이 이베스트투자증권 가족들에게도 마법의 주문을 나눠줬다. 세상 구석구석 도전의 즐거움을 전파하는 그가 당신에게도 띄운 응원을 기쁘게 받아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