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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정동진에 가면 따뜻한 동녘의 햇살과 시린 바닷바람이 동시에 마중 나온다. 경강선 KTX가 개통되면서 서울 등 수도권에서 강원도로 가는 길이 한층 수월해졌다. 평창에선 올림픽 개∙폐회식과 대부분의 설상 경기가, 강릉에선 빙상 종목 전 경기가, 정선에선 알파인 스키 활강 경기가 펼쳐진다.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도 올림픽 기간(2018년 2월 9~25일) 강원도를 찾아올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이다. 조직위 홈페이지를 통해 교통, 숙박 정보 등을 한눈에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여행 전 미리 확인하고 가면, 드넓은 설원에서 즐기는 겨울 스포츠와 백두대간의 산세, 농익은 숲과 이국적인 목장까지 만끽할 수 있다.
해돋이 명소인 정동진에는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간이역이 있다. 역 바로 옆에 길이 250m의 해변이 펼쳐진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정동진해안단구(천연기념물 제437호)는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지질학에서 중요한 곳이다. 정동진에 떠오르는 해는 마치 빗살처럼 떠올라 주변을 물들인다. 해야 어디서나 뜨고 지지만 특히 빼어난 비경을 찾는 까닭은 가는 해를 잘 마무리하고 오는 해를 힘차게 시작하려는 본능과 닿아 있다. 활기 넘치는 포구와는 대조적으로 고즈넉한 겨울 정취가 만연한 해안에 서면 귀밑까지 파고드는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한껏 달려왔다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어서라’고 청하는, 동해바다의 선물이다.
평창의 겨울은 하늘과 가까운 대관령에서부터 시작된다. 겨울의 대관령은 시베리아 설원을 방불케 한다. 한겨울 대관령은 산 아래보다 10℃가량 낮은 데다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분다. 풍력발전기가 괜히 서 있는 게 아니다. 겨울의 풍경은 대개 황량하기 마련인데, 새하얀 설국으로 변신한 대관령은 무척 포근하다. 눈 많기로 소문난 대관령에는 그림 같은 목장이 많다. 그중에서도 올록볼록 솟은 구릉마다 눈을 뒤집어쓴 삼양목장은 반드시 찾아봐야 할 명소 중 하나다. 눈밭을 걷다 보면 몸과 마음도 눈처럼 정갈해지는 느낌이다. 겨울에는 목장을 뛰놀던 양떼들이 모두 우리 안에 들어가 있는데, 목장 길을 산책하고 내려오면 오매불망 건초를 기다리고 있는 양들과 만나게 된다. 눈이 가장 먼저 내리고 또 많이 내리기로 소문난 평창에 있다 보니, 눈 덮인 산비탈을 스키나 스키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정상에 위치한 동해전망대에선 백두대간에서 흘러내린 산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멀리 하얗게 빛나는 산 위에 하얀 구름이 두텁게 깔려 있는 것도 보기 드문 장관이다. 어디까지가 언덕이고 어디서부터가 구름인지 도통 알 수 없는데,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자연이 뒤엉켜 있는 광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평창에서는 겨우내 제법 할 일이 많다. 올겨울 평창에선 ‘윈터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평창 송어축제’와 ‘대관령 눈꽃축제’가 펼쳐진다. 진부시외버스터미널 부근 오대천 둔치에서 지난 12월 22일부터 2018년 2월 25일까지 평창송어축제가 열린다. 약간의 운과 실력만 있다면 누구나 송어 한 두 마리씩은 건져 올릴 수 있다. 축제장 부근에는 송어회를 비롯해 산채정식·백반, 더덕구이, 한우불고기, 도토리묵무침 등 다양한 한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즐비하다. 대관령눈꽃축제도 2월 22일까지 대관령명 횡계리 눈꽃마을에서 열린다. 눈조각 전시와 거리공연, 황병산 사냥놀이, 알몸마라톤대회, 평창 세계거리음식페스티벌 등이 진행된다. 각 축제장의 입장료는 5천 원이며 종합이용권은 1만5천 원이다. 송어축제장 티켓을 보여주면 20% 할인된다.
월정사도 이맘때 유난히 빛난다. 백두대간 중심에 솟아 있는 오대산은 월정사, 상원사, 방아다리약수, 팔각구층석탑, 석조보살좌상 등 많은 사찰과 문화유적을 간직한 곳이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금강교까지 이어지는 숲길엔 500년 수령의 키 큰 전나무가 1000여 그루 넘게 뿌리 내리고 있다. 한겨울에도 전나무는 초록이 선명하다. 웅장한 숲을 감싸는 바람소리가 온몸을 에워싸는가 싶더니,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뻗은 전나무가 나를 내려다보며 무어라 말을 건네는 듯하다. 나뭇가지마다 쉬고 있던 눈이 바람 불 때마다 머리 위로 하얀 꽃가루를 흩뿌린다. 지난 한 해 잘해왔으니 올해도 잘살라는 축복이다. ‘시작’과 참 잘 어울리는 눈길에 지난 회한을 내려놓고 나면, 다시 한 해를 멋지게 시작할 기운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