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Out

상춘객 발길 잡는 초록 물결
경기도 안성시

안성에서 빠른 걸음은 반칙이다.
따로 목적지를 정할 것도 없다. 세상 시름 놓고 유유히 흐르는 물 따라,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 따라,
자연은 한순간도 머무름 없이 묵묵히 흐르며 여행자를 기다린다.
눈 깜짝할 새에 피고 지는 꽃잔치가 아니니 조바심낼 필요도 없다.
봄꽃은 분분히 꽃잎을 떨구며 스러져 가겠지만, 호밀은 6월까지 힘차게 춤춘다.

호밀밭엔 정말로 파수꾼이 살까?

하루가 다르게 주변이 초록빛으로 물들어가는 요즘, 꽉 막힌 꽃놀이 여정이 부담이라면 경기도 안성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어느 방향으로 셔터를 눌러도 봄바람이 만들어내는 초록 물결에 한 폭의 그림이 되는 곳, 안성팜랜드 호밀밭이다. 우리나라에선 그리 흔하지 않은 호밀이 드넓은 평원에서 출렁이며 장관을 연출한다. 한국과 독일 양국의 지원으로 1964년 농협협동조합중앙회에서 문을 연 안성팜랜드는 동물과 뛰놀며 농축산업의 소중함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국내 최대의 체험목장이다.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서 있는 키 큰 미루나무들이 ‘호밀밭의 파수꾼’ 노릇을 맡고 있다. 호밀은 보리와 비슷하지만, 초록이 더 짙고 키도 훤칠하게 크다. 4월 중순이 넘어가면 어른 가슴 높이까지 웃자라 잔바람에도 쉬 일렁이며 진초록 물결을 펼쳐 보인다. 안성 8경(八景) 중 하나인 안성팜랜드에서는 매년 4월 중순부터 ‘안성 호밀밭 축제’도 펼쳐진다. 축제 개최와 함께 시작되는 유채꽃 주간에는 3만 평 규모의 유채꽃밭도 덤으로 구경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요맘때면 지천으로 깔린 배밭에서 배꽃 향기에 흠뻑 젖다 올 수도 있다. 지금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지나고 있는 호밀밭에 배꽃까지 환히 꽃등을 밝히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10만 평 호밀밭에서 배우는 자연과 생명의 가치

발길 닿는 곳마다 눈부신 자연이 어른들의 닫힌 가슴을 열어주고, 조랑말과 양이 모여 노는 체험목장이 아이들을 기다린다. 칡소에서부터 황소, 당나귀, 면양, 거위 등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축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어, 직접 만지고 먹이를 주며 들꽃 한 포기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 냉이 캐기, 호밀 밟기를 비롯해 트랙터 타기, 자전거 타기, 말 타기도 인기다. 목장에서 뛰노는 암갈색 말들을 보고만 있어도 약동하는 봄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언덕 위 미루나무를 흔들던 봄바람이 호밀밭을 훑고 지나가면 온 천지가 초록빛 세상이 되는데, 사각사각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호밀이 벌이는 싱그러운 춤판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이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놓치지 말아야 할 주변 여행지

안성까지 와서 남사당 공연을 안 보고 가면 섭섭하다. 영화 <왕의 남자>로 한층 유명해진 남사당 공연장은 한류 팬이라면 반드시 들러봐야 할 성지로 자리 잡았다. 안성의 전통놀이인 남사당 풍물놀이를 계승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남사당 풍물놀이 전수관도 조성됐다.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이 매 주말 상설공연을 하니, 안성에 간다면 잊지 말고 관람예약을 해 두는 게 좋다. 안성 남사당놀이 상설공연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안성 남사당 공연장에서 즐길 수 있으며, 토요일 공연은 오후 4시, 일요일 공연은 오후 2시에 진행된다.

94만 평 규모의 고삼호수는 원래 농업용수확보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낚시터로 더 유명해졌다. 특히,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고산호수의 새벽 풍경은 신비로움을 넘어 몽환적이다. 자욱한 물안개 위로 떠오르는 붉은 해도 큰 감동을 선사한다. 일출 감상 포인트는 고삼면 향림마을회관 인근이다.

당일치기 여행이 아니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하나 더 있다. 안성에 천문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미양면 강덕리에 민간 천문대가 있으니 자녀와 함께하는 여정이라면 꼭 찾아가보길 권한다. 천체 관측에 최적인 12m 자동 구동 슬라이딩 돔을 비롯해 16인치 슈마트-카세그레인 망원경이 설치된 원형 돔 등이 갖춰져 있으니, 안성의 밤하늘이 열리면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둔 나만의 별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나눠보자.

글. 윤진아
사진. 김선재, 안성시청 문화관광과, 안성팜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