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전국 127개 과학관 중 126개가 초등학생에 초점이 맞춰 있지만, 서울시립과학관은 중고생, 나아가 성인도 직접 관측하고 실험하면서 몸으로 과학을 받아들이게 돕고 있지요.
A. 일선 학교에서, 일반 시민들이 하기 어려운 과학실험을 할 수 있도록 장비와 자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들이 도슨트가 되어 각자 맡은 전시물을 중학생 방문객들에게 설명해주기도 해요. 더 잘 알려주려고 앱도 만들고 퀴즈도 짜다 보면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과학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과학관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되는 거죠. ‘시민 꼬마선충 연구단’을 출범시킨 이유도 맥을 같이합니다. 원래 고등학생 대상으로 워크숍을 열었는데, 성인 지원자도 많더라고요. 이 연구단은 선충을 채집해 DNA를 증폭하고, 추출하는 데 성공하면 DNA 서열을 확인하기까지 합니다. 100팀 중 99팀이 실패할 수도 있고 아예 한 팀도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직접 과학을 해보는 문화와 더불어 ‘시민 과학팀’의 계보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Q. 3월 21일부터 4월 25일까지 서울시립과학관에서 진행 중인 ‘과학 알고 있슈(issue)’ 특별강연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A. 과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이슈들을 상세하게 알아보는 기회를 마련했어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호성 박사님은 오는 5월부터 달라지는 국제단위의 정의에 대해 소개하고, 한국천문연구원 황정아 박사님은 달 탐사 50주년을 맞아 그 과정과 우리나라 천문과학의 미래를 설명합니다. 저도 주기율표 150주년 기념 강연을 합니다. 1869년 러시아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만들었죠. 당시 63개 원소로 구성돼 미완성이었던 주기율표가 현재는 118개로 채워졌고요. 건국대 이종필 교수님은 일반상대성이론 입증 100주년 기념 강연을 펼칩니다. 이 강의를 들으면 중력이 빛을 휘게 한다는 상대성이론이 현대 물리학에 어떻게 기여했으며 일상생활에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Q. 올해는 아폴로 11호 달 착륙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꿈같던 우주여행의 가능성도 급격히 커지고 있죠. ‘놀러 갑시다, 다른 행성으로!’라는 관장님의 칼럼도 흥미로웠어요.
A. 우주에 가려는 사람은 넘치고 기술은 실현 직전입니다. 한국형 우주발사체 개발사업도 본궤도에 올랐죠. 한 번에 성공하기 바라지만, 실패한다고 좌절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과학과 기술은 실패를 먹고 자라니까요. 또, 로켓 발사 경험을 통해 대중의 화두가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간다면, 일상과 세계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당장은 무용해 보여도 언젠가는 우리 삶을 바꾸는 게 과학입니다. 헤르츠가 처음 전자기파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TV, 전자레인지 모두 전자기파로 작동해요. 상대성이론도 우리 일상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상대성이론이 없으면 내비게이션을 쓸 수 없죠. 지구에서 흐르는 시간과 우주에서 흐르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인공위성이 자동차의 위치를 보게 되거든요.
Q. 요즘 관장님의 머릿속을 채운 화두는 뭔가요?
A. 138억 년의 우주, 45억 년의 지구, 100만 년의 인류 발자취를 연결한 ‘빅 히스토리(Big History)’를 과학관 교육에 적용할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현대인에게 138억 년의 우주 역사에서 길어낸 통찰은 우주 속 티끌에 불과한 우리에게 경외감을 일깨울 겁니다. 과학을 하다 보면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인간이 차지한 시간이 얼마나 미미한지 알게 됩니다. 의심과 겸손은 우리가 과학을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죠.
Q.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과학하고 앉아있네>, <250만 분의 1>, <공생 멸종 진화> 등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집필하셨는데요. 입문자용 과학책 좀 추천해주세요.
A. 과학책의 좋은 점이라면, 문학은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지만 과학책은 정독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대개 목차나 서문을 읽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어디에 내가 원하는 정보가 배치돼 있는지, 어떻게 결합돼 새로운 콘텐츠로 짜일지 보이니, 하루 250쪽도 읽을 수 있죠. 입문자라면 너무 많은 정보를 주는 딱딱한 책 말고, 문학적인 과학책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같은 건 너무 두껍잖아요.(웃음) 중학생도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밤하늘을 수놓은 별 이야기를 하는 이명연의 <별 헤는 밤>, 1년 사계절 숲속에서 관찰한 자연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의 <숲에서 우주를 보다> 같은 책은 과학책이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그냥 한 편의 아름다운 문학 같아요. 만화책도 상관없죠. 굳이 어려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어요.
Q.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과학과 기술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요. 이베스트투자증권 임직원을 비롯한 직장인들에게도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한국의 연구개발(R&D) 성공률이 95%라던데, 이건 자랑이 아니라 창피한 겁니다. 소위 ‘안전빵’ 연구만 해온 것이니까요. 성공만 해왔던 똑똑한 사람은 실패를 나쁜 거라 생각해서 ‘될 만한 일’에만 도전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동안은 후발주자라서 선진국을 베껴 쫓아가는 전략이 먹혔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우리가 베낄 만한 것도 없고 심지어 더 잘 베끼는 나라도 많아졌어요. 남들이 했던 걸 재연하는 ‘추격형’에 머무르지 말고, 실패를 경험하고 용인하는 ‘선도형’으로 바꿔야 합니다. 이제 세상살이를 위해 누구나 과학과 친해지고 익숙해야만 하는 시대가 됐어요. 직장인들도 더 많은 상상과 시도를 하기 바랍니다. 이베스트투자증권 임직원들도 할 일이 많을 겁니다. 1년, 5년, 10년 뒤의 경제상황을 예측해 어느 기술이 얼마나 필요할지 분석하고, 투자하고, 빅데이터를 구축해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하니까요. 새로운 시도와 실패가 두려워 주저하게 된다면, 당장 이번 주말에라도 과학관에 오세요.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는 궁극의 회복탄력성을 과학관에서 만들어드릴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