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Out

동녘 햇살에 웅크린 몸 녹고, 겨울 속살에
오감이 동하네 경북 울진

‘새해’라 쓰고 ‘시작’이라 읽는 1월,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갈 여행지를 찾았다면 여기가 제격이다.
따뜻한 동녘의 햇살과 시린 바닷바람이 동시에 마중 나오는 요맘때의 울진은
겨울과 봄 두 계절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어촌마다 꾸덕꾸덕 곰삭은 시간의 향기가 피어오르고, 솔숲에선 먼 바다에서 시작된 심연의 기운이 밀려든다.
활기 넘치는 포구와는 대조적으로 고즈넉한 겨울 정취가 만연한 해안에 서면, 귀밑까지 파고드는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한껏 달려왔다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어서라’고 청하는, 경북 울진이다.

고요한 숲에서 자신과 마주하다

웅장한 숲을 감싸는 바람소리가 온몸을 에워싸는가 싶더니,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뻗은 소나무가 나를 내려다보며 무어라 말을 건네는 듯하다. 예부터 ‘진귀한 보배가 많은 곳’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울진에는 해안가나 강가, 산속 어디든 소나무가 울창하다. 소나무 중에서도 혈통이 가장 좋다는 금강송이다. 옛 선비들이 꼭 가보고자 한 관동팔경 가운데 월송정과 망양정이 울진에 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절경의 연속인 망양정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대미를 장식한 비경으로 알려져 있다. 짙푸른 동해를 내려다보며 비상하듯 앉은 모습에서, 옛 시인 묵객들이 망양정에 감탄한 이유를 쉬 짐작할 수 있다. 신라시대 화랑들이 달을 즐기던 월송정은 정자에서 굽어보는 바다 풍경도 아름답지만, 길 주위에 펼쳐진 솔밭이 보물이다.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길은 산림청이 국비로 조성한 1호 숲길로, 옛 보부상들이 울진 앞바다에서 잡은 해산물과 소금을 지게에 지고 내륙까지 나르던 통로였다. 아름드리 금강송이 길을 따라 병풍처럼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탐방인원을 제한하고 주민이 숲 해설가로 참여하거나 전통주막・민박을 공동 운영해 소득을 분배하는 등 공정여행의 대표적 명소로 꼽힌다. 불영사는 불상이 물속에 비친다고 해 이름 붙여진 천년고찰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기암괴석, 맑은 계곡 물줄기,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명승지로, 겨울에 가면 근사한 설경도 덤으로 볼 수 있다.

가자! 새 희망이 떠오른다

해야 어디서나 뜨고 지지만 특히 빼어난 비경을 찾는 까닭은 가는 해를 잘 마무리하고 오는 해를 힘차게 시작하려는 본능과 닿아 있다. 겨울 여행을 논할 때 해넘이와 해맞이를 모두 볼 수 있는 울진을 빠뜨릴 수 없다. 기실 도서 지역을 제외하면 서울에서 가장 먼 여정인 울진은 태백준령이 가로막고 있어 찾아가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길을 마다치 않는 이유는 오직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울진의 맛과 멋 때문이다. 망양정 바로 옆에 있는 해맞이공원은 새해 일출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다. 망망대해를 붉게 물들이며 수평선을 박차고 솟아오르는 태양이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겨준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볼거리는 울진의 깨끗한 생태다. 태백준령 덕분에 울진에는 아직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곳이 많다. 순백의 나뭇가지마다 쉬고 있던 눈이 바람 불 때마다 머리 위로 하얀 꽃가루를 흩뿌린다. 지난 한 해 잘해왔으니 올해도 잘살라는 축복이다. ‘시작’과 참 잘 어울리는 깨끗한 설국에 지난 회한을 내려놓고 나면, 다시 한 해를 멋지게 시작할 기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차디찬 바닷바람이 전해온 겨울의 속살

매년 이맘때면 울진 바다는 대게 찌는 구수한 냄새로 무르익는다. 수평선이 붉게 물들면 대게잡이 어선이 만선 깃발을 펄럭이며 항구로 돌아오며 활기찬 아침을 연다. 언제 가도 북적대는 법이 없는 구산항은 어판장 뒤로 겨우 몇 척의 배가 정박하고 있을 만큼 작은 포구다. 겨울철 최고의 별미로 꼽히는 울진 대게를 맛보려면 후포항이 좋다. 후포어시장에서 대게를 고르면 그 자리에서 쪄주는데, 붉고 긴 다리 속에 탱글탱글 꽉 찬 속살이 겨울철 잃어버린 입맛을 되살려준다. 속살을 싹 발라먹고 남은 게장을 모아 참기름 몇 방울에 김과 김치를 넣어 밥을 비벼 먹다 보면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다. 차디찬 바닷바람이 전해온 겨울의 속살을 즐기며 때론 철썩이는 깨우침으로, 때론 고요한 울림으로 새 기운을 불어넣어 준 울진 여행의 일분일초를 다시금 음미해보는 것도 좋겠다.

글. 윤진아
사진. 김선재, 울진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