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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러 라쉬 (Tyler Rasch)

‘이기적인 착한 일’ 다들 하고 계신가요?

질문 하나하나를 골똘히 경청하며 유창한 한국어로 현답을 들려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게 된다.
타일러 라쉬(Tyler Rasch)는 미국 시카고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외교학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2011년 한국에 왔다.
어느덧 한국생활 10년 차. 방송인, 강연자,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컨설팅 회사 대표 외에도 최근엔 작가 직함까지 더해졌다.
“내 꿈은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밝힌 타일러가
이베스트투자증권 가족들에게 “이기적인 착한 일에 동참하자!”고 청한다.






Q. 반갑습니다. 이베스트투자증권 웹진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A. 이베스트투자증권 가족 여러분, 반갑습니다. 10년 전 학업차 한국에 왔다가 우연히 방송활동을 하게 됐고, 지금까지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 타일러입니다.


Q. 올해로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됐습니다. 그간 한국생활은 어땠나요?

A. 미국에서만 살았다면 미국적인 것만 알고 미국이라는 틀 안에서만 살았을 텐데, 한국생활을 하면서 꼭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한 나라에 갇힐 필요 없이 지구 전체가 내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미국에 있을 땐 유럽에서 대학원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최근엔 ‘노르웨이에서 기후과학 대학원을 다녀볼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됐어요. 한국생활을 통해 제 인생이 확장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Q. 최근 기후위기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계신데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나요?

A. 천천히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매일 느끼는 문제니까요. 밖으로 나가 마음껏 달리고 싶어도 매번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해야 하잖아요. 셀 수 없이 많은 것이 걱정되고, 그걸 해결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죠.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에 신음하고 있지만, 다행히 한국은 바이러스에 빠르고 체계적으로 대응해서 제 일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바뀐 것이라고는 마스크를 매일 쓰게 되었다는 것 정도인데, 사실 저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마스크를 많이 사두었어요. 미세먼지가 심각했으니까요. ‘대기오염 때문에 산 마스크를 바이러스 때문에 또 쓰네?’ 마스크를 쓸 때마다 아이러니하게 느끼곤 해요. 환경보호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이기적이고도 착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Q. 그동안 가장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책 [두 번째 지구는 없다]에 담았다고요.

A. 방송에서 꺼내면 재미없다는 이유로 편집되거나 ‘빨리 감기’ 대상이 되기 일쑤였거든요.(웃음) 저는 미국 버몬트주의 숲속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바위를 기어 올라가고 개구리를 잡으며 놀았어요. 그런데 시카고와 서울 등 대도시에서 살면서 우리가 자연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잊고 지냈고, 그러는 사이 지구의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어요. 전문가도 아닌 제가 환경을 이야기하는 건, 누구라도 당장 말을 꺼내고 너나없이 당장 행동해야 할 만큼 지구의 상황이 절박해서입니다.

Q. 최근 출간한 책은 국내 종합출판사가 FSC 인증 방식으로 펴낸 첫 대중서라고요.

A. 그동안 출간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제가 원하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책을 내지 못했어요. ‘모든 종이는 산림자원과 환경 보호를 위해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에서 인증받은 것을 쓰고, 콩기름 잉크로 인쇄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는데요. 매번 돌아온 대답은 ‘전례가 없다’, ‘불가능하다’였어요. 한국 인쇄소들도 FSC 인증 방식으로 책을 찍을 수 있었지만, 모두 수출용에 국한됐다고 해요. 한국에선 아무도 요구하지 않아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아쉬움이 컸죠. 이 책은 불필요한 종이 낭비를 막기 위해 띠지를 생략하고 종이 손실이 적은 판형을 선택했어요.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 전체가 환경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나온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결코 과거에 짐작한 모습이 아니다’라는 경고도 인상적이었어요.

A. 유난히 길었던 올해 장마와 강한 태풍도 기후위기의 증거입니다. 한국에 10년간 살면서 여름은 점점 더 더워졌어요. 태풍 또한 강력해지고, 빈번해졌고요. 세계보건기구와 IPCC는 앞으로 감염병이 더 자주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요. 코로나19는 기후위기로 인해 우리가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의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우리가 막연하게 꿈꾸던 은퇴 이후의 생활들은 모두 이루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커요. 가령 바닷가에 집을 짓고 올레길을 걸으며 자연 풍경을 바라보는 낭만적인 미래는 오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기후위기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거든요. 제가 은퇴할 나이가 되는 2050년대에는 지금보다 해수면이 올라 많은 지역이 물에 잠길 겁니다.

Q. 환경 파괴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되고 있다는 수많은 지표도 눈길을 끕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을 움직인 지표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경제적인 지표였죠. WWF에서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위기로 인해 매년 세계총생산 중 최소 4,790억 달러(한화 약 575조 원), 2050년까지 누적 9조 8,600억 달러(약 1경 1,800조 원)의 손실이 발생합니다. 또한, 향후 30년간 지금과 같이 자원을 소비할 경우 한국에 예상되는 GDP 손실액은 최소 12조 원이에요. 기후위기 문제로 인해 국가경제가 어려워지면 ‘과연 30년 후에 은퇴하고 병원에 가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을까?’, ‘내가 다니는 직장은 온전할까?’라는 걱정이 드는 거죠. 무엇보다 경제적인 수치를 보면 이제 움직여야 할 때라는 마음이 생겨요.

Q. 자신을 10년이나 머물게 한 한국의 매력으로 ‘잠재력’을 꼽았던 인터뷰를 기억하는데요. 기후위기 문제와 관련해 한국사회가 나아갈 바를 제언한다면.

A. 자원 절약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순환경제’로의 전환이 지금껏 어느 국가에서도 완벽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만약 한국이 그 전환에 성공한다면 세계적으로 주도권을 쥘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위기 때 세계가 한국을 따라 한 것처럼, 다른 나라들이 한국의 순환경제 모델을 돈을 내고 사 가야 하는 거죠. 앞으로 기후위기는 계속 이슈가 되고 더 심각해질 텐데, 그런 리더십을 가진다면 한국에 큰 이득일 겁니다. 이제 순환경제로의 전환은 필연이에요. 다른 나라가 먼저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따라갈 것이냐, 먼저 움직일 것이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Q. 개인적으로 지구를 위해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는 일을 공유해주세요.

A. 가장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구매하려는 상품이 친환경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거예요. 가령 편의점에서 두유를 산다면, FSC 인증이 찍힌 두유를 사는 거죠. 레인포레스트(Rain Forest Alliance, 열대우림동맹), MSC(Marine Stewardship Council, 해양관리협의회) 인증도 있는데요. 이런 친환경 인증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환경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인증받은 상품을 산다는 건 곧 환경을 위하는 기업을 응원하는 거니까요. 반대로, 환경을 해치는 기업 제품 불매운동으로 해당 기업의 노선을 변경하는 데 영향을 줄 수도 있죠.

Q. 요즘 근황과 관심사도 궁금합니다.

A.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제 삶에도 변화가 많았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좀 더 알차게 보내려고 최근 한자 공부를 시작했고, 운동도 틈틈이 하고 있어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좀 더 깊이 생각해보는 성찰의 시간도 가져보려고 해요. 그런데 제가 자꾸 새로운 일을 벌이는 성격이다 보니, 과연 잘 될지는 모르겠네요.(웃음)





Q. 타일러의 꿈은 무엇인가요?

A. 논어에 ‘스스로의 한계를 긋지 말라’라는 말이 있어요. 제 꿈은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제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통제할 수는 없잖아요.(웃음) 대신, 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조건’을 내세울 수는 있겠죠. 제가 FSC 인증이 가능한 출판사를 통해 책을 출간한 것처럼요. 지금 운영하는 회사와 계약하는 업체들에는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온라인 계약만 하게끔 하는 조건을 내세울 수도 있겠죠. 일단은 실천가능한 조건들을 통해 환경에 대한 사회의 전반적인 기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당장의 제 목표입니다.

Q. 긴 시간 진솔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이베스트투자증권 가족들에게 전하고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 만약 1990년대에 미리 닷컴 붐과 스마트 시대가 올 걸 예상하고 준비했다면 지금 얼마나 잘 살고 있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사실 우리 인간사회는 이미 한 차례 큰 변화를 겪었고, 이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던 모습이 됐어요. 기후위기 또한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훨씬 더 큰 규모일 겁니다. 어디서 살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뭘 하며 놀고 싶은지를 포함한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환경문제로 결정될 테고요. 환경 이슈를 모르고서는 그 누구도 잘살 수 없는 시대인 만큼, 이베스트투자증권 가족 여러분들도 기후위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실천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