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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제로, 내 삶을 바꾸는 일

(a.k.a. 제로 웨이스트)

사과 한 개도 랩과 스티로폼에 싸여 나오는 요즘, 쓰레기 없는 소비란 쉽지 않다.
지구를 병들게 한 것도 인간이지만, 되살릴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
합리적인 소비와 건강한 습관이 있는 가게, 낭비 없는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을 믿기에,
제로 웨이스트 숍에 간다.

지구한테 미안해서 ‘쓸 만큼만 산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는 재활용 가능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포장을 최소화해 쓰레기를 줄이는 친환경 캠페인이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3억 톤에 이른다. 비닐 한 장은 분해되는 데 100년, 플라스틱은 50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분해 후에도 없어지지 않고 우리 곁에 머문다는 사실이다.

망원역 근처에 있는 알맹상점은 ‘제로 웨이스트’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겐 성지 같은 곳이다. 알맹상점은 포장재 하나 없이 ‘알맹이’만 파는 제로 웨이스트 숍이다. 빈 용기를 가져와 샴푸, 세제, 화장품 등을 필요한 만큼만 담고, 무게를 달아 돈을 내는 시스템이다.

알맹상점의 메인 코너인 ‘리필 스테이션’에서는 필요한 만큼 세제와 샴푸, 화장품을 덜어 살 수 있다. 단,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위생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집에 있는 빈 용기를 세척해 가져오면 유리는 열탕소독하고 플라스틱은 식물성 에탄올로 소독한다. 미처 세척하지 못했다면, 알맹상점 주방에서 직접 씻고 살균건조기에 넣어 건조한 후에 담아가도 된다. 소독한 유리병과 플라스틱병을 500원에 살 수도 있다. 포장재값이 빠져 가격경쟁력도 있다. 알맹상점은 친환경 세제와 섬유유연제는 ㎖당 4~7원, 샴푸와 린스는 ㎖당 15~30원에 판매한다. 온라인 쇼핑몰보다 저렴한 셈이다. 적은 양을 소분해서 살 수 있다는 것도 장점! 공짜 샘플을 안 주는 대신 알맹상점에서는 샘플처럼 아주 적은 양도 구매할 수 있다. 공정무역 올리브오일, 친환경 화분, 천연 수세미, 다회용 빨대 등등 다양한 친환경 상품도 팝업 스토어 형식으로 판매한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

매장 한쪽에 마련한 ‘커뮤니티 회수센터’엔 기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개인이 처리하면 쓰레기로 버려질 빨대, 병뚜껑, 렌즈통, 커피가루 등을 갖다주면, 색깔별로 분류해 뒀다가 재활용 가능한 업체로 보낸다. 커피찌꺼기는 화분이 되고, 병뚜껑과 빨대는 치약짜개로, 우유팩은 화장지로 재탄생한다. 기부하면 선물도 준다. 작은 플라스틱, 우유팩, 페트병을 들고 가면 10개당 하나씩 도장을 찍어주는데, 쿠폰 12개를 다 채우면 알맹 친환경 상품을 랜덤으로 받을 수 있다.

‘알맹상점 공유센터’는 물물교환센터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놓고 메모장에 사연을 적으면, 누구든 필요한 사람이 물건을 가져가면 된다. 버려지는 것들의 의미를 되새기고 소용이 다한 소재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알맹의 바람은 ‘우리 동네 자원 순환기지’가 되는 것! ‘제로 웨이스트’가 그저 구호가 아닌 실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곁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증명하고 있다.

  • 알맹상점 찾아가기
  • 위치: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 49
    운영시간: 일~화요일 오전 11시~오후 4시, 목~토요일 오후 2시~오후 9시



Recycling 이전에 Precycling!

폐기물 처리에 대한 고민과 대안이 ‘Recycling’이라면, ‘Precycling’은 처음부터 폐기물을 만들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미리 조금 더 수고해 아예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서울숲 옆 성수동에 문을 연 ‘더 피커’는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들을 최소화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시도한다. ‘더 피커(The Picker)’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농작물을 수확한 사람들, 그리고 그 수확물 중 필요한 것을 담아 가는 사람을 뜻한다. 더 피커는 곡물과 과일, 채소 등 30여 가지 식료품을 바구니와 디스펜서에 담아 파는 매장이다. 대나무 면 소재로 만든 다회용 화장솜 등 지구에 이로운 친환경 상품도 판매 중이다. 담아갈 용기는 소비자가 가져와야 한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자연 분해 용기도 함께 판매한다. 유통 과정에서 생기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더 피커는 지방 각지의 생산자들을 찾아다니며 ‘소분 포장을 하지 않는 판매’를 실현했다. 농가에서부터 유통 과정이 시작되다 보니 대용량 벌크 포장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더 피커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은 말 그대로 제로에 가깝다. 영수증도 먼저 요청하지 않으면 아예 뽑지 않는다. 덕분에 더 피커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양은 한 달에 10L 종량제봉투 하나 정도! 고객이 두고 간 쓰레기나 가게 앞에 쌓인 낙엽 등을 치울 때만 쓴다. 단순히 쓰레기만 덜 나오는 게 아니다. 각자 필요한 만큼만 담으면 되니 과소비 염려도 없다.

최근 전 지구를 강타하고 있는 재난적 기후위기 때문일까, 더 피커를 찾는 소비자는 나날이 늘고 있다. 쓰레기의 역습을 피부로 느낀 사람들은 지속가능한 실천방식을 찾아가는 중이다. 버릴 때 재활용이 되는지, 폐기물이 얼마나 남는지를 꼼꼼히 따져보고, 쓰레기를 최소화할 상품 고르기! 재앙을 희망으로 바꾸는 일은 절대 거창한 일이 아니다.





글. 윤진아
사진. 김선재+알맹상점+더피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