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전 직전의 배터리처럼 하루하루 버텨내지만,
코로나19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사람들의 피로도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 블루(blue·우울감)’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우리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정말 괜찮은 걸까?
재난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피로감, 두통, 가슴 통증, 어지러움, 소화불량, 호흡곤란, 불안, 불면 등
다양한 반응을 야기한다. 문제는 이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정신신체의학, 스트레스의학 권위자인 윤대현 교수는 이런 때일수록 ‘마음의 환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음이 무너지면 몸이 함께 무너진다. 물리적 방역 못지않게 심리적 방역이 중요한 이유다.
- 윤대현 교수는
- 2013~2016년 매주 월~금요일 아침 MBC 라디오 [윤대현의 마음연구소]를 진행했고, 한국자살예방협회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신신체의학회 학술회원, 한국바그너협회 총무이사 등을 역임하며 정신신체의학의 대중화를 이끌어왔다.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오겠습니다》《일단 내 마음부터 안아주세요》 《하루 3분, 나만 생각하는 시간》 등의 저서 출간 이외에도 요즘은 조선일보 [윤대현의 마음읽기] 등의 컬럼 기고와 강연을 통해 현대인에게 ‘마음 처방전’을 나눠준다. 치열하게 달려왔지만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불안하고, 불행하다면 ‘지금 당장 단 10분이라도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의 마음과 대면하라!’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A. 그럼요. 요즘 다들 불안감이 올라가지 않았겠습니까? 전에 없던 변화에 적응이 어렵다며 답답함과 두근거림을 호소하는 환자도 많은데, 만나고 싶은 사람조차 편히 볼 수 없는 거리두기까지 중첩되니 설상가상이죠. 스트레스가 증가하니 심리적 허기가 찾아와 필요 이상 과식하게 되고, 즐기던 신체활동도 줄어드니 체중이 늘고, 결국 건강검진에서 지방간까지 발견돼 우울하다는 걱정 등 코로나 발(發) 건강 문제는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A. 스트레스가 많았던 어느 날 감기가 툭 찾아왔다거나,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 번쯤은 다 하셨을 텐데요. 마음 관리는 몸 관리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뇌도 번아웃되지 않으려면 쉬어줘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잘 때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바이러스의 마지막 방어선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인데, 마음이 불편해지면 내 몸의 면역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게 당연하죠.
A. 가장 쉬운 게 가벼운 신체활동입니다. 요즘 거리두기 때문에 아무런 활동을 안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가벼운 운동은 항스트레스나 항우울제 약물만큼 효과가 있습니다. 좀 한적한 시간대에 마스크 착용하고 가족과 함께 산책이라도 해보세요. 새소리, 물소리, 푸른 숲, 맑은 공기, 파란 하늘에 굳게 닫혀 있던 오감이 열리고 우뇌가 활성화되거든요. “참 좋구나!’ 하는 감동과 함께 신경세포의 소포들이 터지면서 세로토닌을 분비하고 면역력도 올려줄 겁니다. 또, 사회적•물리적 거리는 두더라도 마음까지 떠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떨어져 있는 부모님, 친구들, 경우에 따라서는 확진판정을 받고 격리된 지인들에게 전화나 SNS 등을 활용해 마음의 거리는 더 가깝게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A. 공황•공포•불면 등의 스트레스 증상으로 외래를 찾는 분들이 많은데요. 표현되는 형태만 다를 뿐 과도한 불안감이 주된 원인입니다. 불안이 몸까지 퍼져 심장이 멈출 것 같고 호흡곤란이 오면서 곧 죽을 것 같은 느낌마저 찾아오는 불안이 ‘공황’입니다. 불안이 적정 수준을 넘어가면 삶이 불편해집니다. 불안은 미래만 쳐다보게 하거든요.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 건강염려증이 찾아오면, 마음이 모두 미래에 가 버려 막상 행복해야 할 현재가 쪼그라들어 버립니다. 불안한 미래에 마음이 주로 가 있으면 삶이 피곤하고 허무하게만 느껴지기 쉽죠. 명심해야 할 것은, 불안은 도망칠수록 더 세게 다가오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불안을 직시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기관리를 하는 동시에, 평생 단 한 번뿐인 오늘이 헛되이 지나가지 않도록 ‘내 마음이 좋아하는 일’ 한 가지는 간단하게라도 즐기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A. 우린 꿈을 꿉니다. 그 꿈을 해석할 수 있는지 질문하면 대부분 당연하다는 듯 어렵다고 말하는데, 이게 사실은 이상한 상황이거든요. 꿈이라는 영화의 제작자가 바로 나 아닙니까? 내가 만든 영화를 내가 이해 못 하는 황당한 경험을 매일 밤 하고 있는 거죠. 꿈의 감독이 ‘마음’이다 보니 생긴 일입니다. 제 환자 중 한 여성분이 불면증이 악화되어 연유를 물으니, 남편의 로망이 주말농장이었는데 드디어 시골에 땅을 마련하여 농사지으러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시골에 내려가는 게 스트레스라는 거죠. 2주 후 다시 뵙게 되었는데, 반전이 펼쳐집니다. 전원생활을 그려온 남편은 땅을 만지는 순간 도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억지로 내려간 본인은 흙을 만지는 순간 ‘이것이 내 인생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불면증도 호전됐고요. 이 환자뿐만 아니라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예상치도 못한 장소나 활동에서 삶의 만족과 행복을 경험하고 신기해합니다. 내 마음을 내가 잘 모르기에 일어나는 현상이죠..
A. '염증성 우울증'은 신체의 염증 물질이 혈관을 타고 뇌에 영향을 미쳐 신경세포 기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겁니다. 면역정신의학은 마음과 뇌, 그리고 면역기관의 상호작용을 밝히는 분야인데요. 신체의 염증이 우울을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우울이 몸에 염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경제적 문제나 사회적 고립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사이토카인 같은 염증생체지표가 증가하는데요. 우울과 염증이 서로 치고받으며 순환사슬이 생길 수 있다는 거죠. 가령 스트레스로 많이 먹어 살이 찌면, 늘어난 비만세포에서 나오는 염증물질이 우울감을 일으키고, 다시 심리적 허기를 더 키우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마음은 몸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음 관리는 곧 몸 관리입니다. 마음 방역은 코로나로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로 면역기능의 문제가 생겨 바이러스 방어나 만성 질환, 염증성 우울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A.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분비되는 물질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온몸의 세포 반응도 달라집니다. 머리가 복잡하고 일이 풀리지 않으면 벌떡 일어나 잠시 공원이라도 거닐어보세요. 한 걸음 한 걸음 땅을 내딛는 내 발걸음에 집중해서 말입니다. 뇌과학에서 보면 쉰다는 건 ‘일을 안 한다’가 아니라 ‘쉴 때 작동하는 신경망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겁니다. 쉬거나 노는 것도 일하는 것만큼 능동적인 활동이라는 뜻이죠.
A. 의심할 여지 없이 나를 행복하고 또 보람 있게 해주는 일들이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어느 순간 번아웃 상태가 되더군요. 그래서 몇 년 전에는 베이스기타라는 새로운 취미를 만들었습니다. 지친 뇌와 마음을 충전하는 데 제일 좋은 에너지원이 사람, 자연, 문화거든요. 점심시간에 잠시만 시간을 내 하늘을 바라보며 걷는 것도 좋고, 문화를 즐기는 취미를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의 경우, 기타를 배우고 지인들과 함께 연주하며 얻는 행복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해, 바쁜 시간을 쪼개어 록밴드도 결성하고 공연까지 했답니다.”
A.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정작 내 마음을 돌보는 일에 소홀합니다. 혹시나 내가 한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자책하면서, 나 자신에게 했던 모질고 냉정한 말들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러다 갑자기 우울감에 빠지고, 무기력해져서 모든 일에 쉽게 짜증이 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맞이하죠. 왜 우리는 남에게는 친절하면서 나에게는 무례할까요? 저는 26년간 상담실과 TV,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서 수많은 고민을 접해왔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의지가 부족하거나 나약해서 힘든 게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참거나 애쓰기 때문에 정작 필요한 순간에 힘을 내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소중히 대해주지 못했던 내 마음을 다독이고, 위로하고, 사랑해주세요. 하루에 잠깐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본다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힘이 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우리 동네에 몇 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데요.
일선 의료현장에서도 코로나19 때문에 이상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