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넘이와 해맞이를 한 곳에서
서천 북쪽 끄트머리의 작고 한적한 어촌인 마량포구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길게 튀어나온 지형적 조건 때문에, 태양의 위치가 남쪽으로 많이 이동해 있는 겨울철에는 섬이나 육지에 걸리지 않고 온전히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감상할 수 있다. 포구 인근의 마량리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69호)에는 500년 수령의 동백나무 8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룬다. 바닷바람을 피할 수 있는 언덕마루에는 중층(中層) 누각 동백정이 있는데, 동백정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가 장관을 이룬다.
서억서억 은빛 갈대의 배웅
충청도와 전라도를 가르며 흐르는 금강은 서해로 흘러들기 전에 장대한 갈대밭을 펼쳐 놓았다. 무려 10만여 평에 이르는 서천군 한산면 신성리 갈대밭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병헌과 송강호가 처음 마주친 곳으로, 겨울 한기 속에 가장 빼어난 비경을 뽐낸다. 금강 하류의 퇴적물이 쌓인 곳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신성리 갈대밭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갈대 7선’이자 ‘한국 4대 갈대밭’으로 뽑힌 대표적인 갈대 서식지다. 바람을 가르며 너울너울 춤추는 키 높은 갈대 사이로 산책로가 이어져 있는데, 갈대를 주제로 한 시구가 곳곳에 적혀 있어 운치를 더한다. 금강을 따라 이어진 둑길을 걷다가 얼기설기 엮어 만든 습지 위에 놓인 흔들다리도 건너보자. 자녀들의 방학에 맞춰 습지 생태를 공부하는 기회로 삼아도 그만이다.
쉬다 가라, 철새처럼!
서걱대며 출렁이는 갈대밭 위로 후드득 철새가 날아오른다.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귀한 손님, 겨울 철새가 창공에서 펼치는 화려한 군무도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서천과 군산 사이로 흐르는 금강하구엔 11월부터 가창오리, 고니, 청둥오리 등 30여 종 수십만 마리의 희귀철새가 몰려들어 장관을 연출한다. 국내 최대 철새도래지 금강하구는 2012년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에 등재돼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인정받았다. 수천 마리의 새가 동시에 허공을 박차고 솟아오르는 장관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 한 해를 멋지게 시작할 기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술 익는 마을에 들어 세상 근심을 잊다
서천에 왔다면 한산 소곡주는 꼭 한잔 마셔봐야 한다. 첫 잔을 마시면 그 향기로운 맛에 반해 일어날 수 없고, 두 번째 잔을 마시면 어느새 손끝, 발끝까지 취해 몸을 일으킬 수 없다 하여 ‘앉은뱅이술’이라고 불린다. 한산 소곡주는 지금껏 전해지는 한국 전통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술이다. 찹쌀과 누룩을 주원료로 하는 한산 소곡주는 보통 음력 10월 셋째 주쯤 빚는데, 설에 맞춰 맛있게 숙성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잔 가까이 코를 대면 고소한 누룩 향이 스며들고, 한 모금 머금으면 입 안 가득 찬찬히 달콤한 기운이 번진다. ‘한껏 달려왔다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일어서라’고 청하는 선조들의 선물이다.
글. 윤진아
사진. 김선재, 서천군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