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는 배움에서 나온다
그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우의(禹儀)이며, 흔히 알고 있는 봉길은 별명이다. 1918년 덕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1919년 3·1운동으로 학교를 자퇴하고 1921년 한학을 수학하였다. 그는 서당에서 공부를 하다가 어느 날 산책길에 한 무지한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그 청년은 선친의 무덤을 찾아 달라고 간청하고 있었으며, 무덤의 위치조차 알 수 없는 청년의 무식이 나라를 잃게 만들었다는 생각으로 그는 계몽운동을 시작하였다. 1926년, 농민계몽을 비롯하여 독서회 운동 등 농촌사회운동을 전개해 나갔고 『농민독본』 이라는 교재를 집필하였다. 이 교재는 백두산, 조선 지도, 자유, 농민과 공동정신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교재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단순한 계몽에 머무르지 않고 민족 얼의 부흥을 꿈꿨다. 그뿐만 아니라 야학회를 구성하여 농촌의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해 한글을 가르치고 민족 의식을 심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1929년 부흥원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였고 농촌 부흥운동을 추진하다 같은 해 2월 학예회를 열었다. ‘토끼와 여우’를 공연했는데 많은 관람객이 모였고 이 일을 발단으로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보라! 풀은 꽃이 피고 나무는 열매를 맺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 저도 이상(理想)의 꽃이 피고 목적의 열매가 맺기를 자신합니다.
그리고 우리 청년 세대는 부모의 사랑보다도, 형제의 사랑보다도, 처자의 사랑보다도
일층 더 강의(强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각오하였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어머니에게 보낸 서신 中